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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응답하라 1988 11회. 최택(박보검)의 해맑은 눈빛은 애틋하면서도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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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응답하라 1988> 쌍문동 아이들에게 택이란? 





제 아무리 바둑판을 평정한 황제라고 한들, 쌍문동 아이들에게는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일 뿐인 최택(박보검 분)의 예상치 못한 고백이 이어진 이후, 쌍문동 아이들 사이에서는 정적만 맴돈다. 에이 설마 성덕선(혜리 분)이 여자라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선우(고경표 분), 동룡(이동휘 분)의 낄낄거림에 도무지 함께 박자를 맞추어 줄 수 없는 한 남자가 있으니. 언제부터 인가 덕선을 불알 친구가 아닌 여자로 바라보기 시작한 김정환(류준열 분)이 마지못해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응답하라 1988>의 대다수 시청자들은 "어차피 (덕선) 남편은 류준열"이라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새로운 정적 등장에 급격히 자신감을 잃은 눈치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하필 택이라니. 모르면 몰랐지, 이미 모든 사실을 안 이상, 정환은 더 이상 덕선과 친구 이상의 관계를 발전시킬 자신이 없다. 택이가 잘생겨서(진짜진짜 잘생기긴 했지만), 어린 나이에 돈 잘버는 능력자라서, 도무지 그를 이길 수 없는 내가 한 발자국 물러선다 이런 차원이 아니다. 덕선도 자신이 아닌 택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 그리고 자신 때문에 행여나 택이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정환의 바쁜 발걸음을 계속 묶게 한다. 





반면, 바둑판 앞에서는 몇 수를 내다본다고 한들, 자신이 사는 현실 앞에서는 한 치 앞도 못 내려다보는 택이는 덕선이 함께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요,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다.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렇게 깍듯 하다는 택이가 덕선이 앞에서만 서면 어리광쟁이가 되어버리니, 택이에게 덕선은 바둑을 제외한 그의 전부요, 세계의 중심이다. 


쌍문동 아이들 모두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돌고, 우주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한들, 최택의 소우주는 언틋 보면 단단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쉽게 깨질 것 같은 유리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여리고 여린 최택을 감싸고 있는 그 유리가 깨질까 두렵다. 가뜩이나 볼 때마다 짠내나는 택이가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그런 애틋한 마음이 이미 승자가 정해져있다는 판임을 뻔히 알면서도 자꾸만 기웃거리게 하는 것 같다. 





덕선에게도 이미 쓰디쓴 첫 사랑의 아픈 기억이 있다. 애초 그녀가 좋아한 남자는 선우다. 하지만 우스꽝스럽게도, 덕선의 첫 사랑은 훗날 어른이 된 덕선이 종종 그 생각이 날 때마다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하고픈 인생의 최대 굴욕 해프닝으로 남게된다.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었던 선우가 자신이 아닌 언니 보라(류혜영 분)을 연모하고 있다는 진실을 접한 덕선은 분한 나머지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선우는 덕선의 남편이 아니었습니다라고 밝혀지는 순간, 27년 전 그 당시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오열하던 덕선의 눈물은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추억의 한 켠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도 덕선의 곁에는 선우보다도 그녀를 좋아하고 아껴주던 한 남자가 곁에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첫사랑의 아픔 또한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위해 거쳐야했던 통과 의례, 성장통으로 치환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의 작은 소우주에 오직 바둑과 덕선이만 존재하는 것 같은 택이를 보면 그저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것 마냥 불안하고 두렵다. 애초 게임의 승자가 택이로 정해져있다면, 마음 편안히 볼 수 있겠지만, 택이가 살아가야하는 세상은 그가 하루종일 앉아서 어떻게든 승부를 가릴 수 있는 바둑판이 아니다. 그보다 더 복잡하며, 예측 불허다. 게다가 승부도 이미 한 쪽으로 기울어져있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 최택은 자신의 전부 였던 바둑판을 박차고 나와, 덕선의 남자가 되기 위한 무모한 판에 기꺼이 바둑돌 하나를 올려놓는다. 





어쩌면 바둑판 앞에서 와는 달리, 세상 일은 한 치 앞도 못보는 최택이기 때문에 한동안은 의외로 그에게 유리하게 판이 돌아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내 택이를 지탱하고 있던 세계의 중심이 본의 아니게 흔들리게 된다면, 그 또한 너무 아픈 사랑은 아니었음으로 기억되기를. 향후 자신과 자신을 감싸고 있는 세계가 어떤 소용돌이에 휘몰아칠지 꿈에도 모른 채, 눈 앞의 덕선에게 앙탈을 부리는 택이의 해맑은 두 눈이 유독 보는 이의 가슴을 시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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