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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다시 태어나도 우리' 특별한 운명을 가진 소년과 스승의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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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라다크에 살고 있는 9살 소년 앙뚜의 전생은 티베트 캄의 고승이다. 티베트 불교의 고승들은 전생에 못다한 보살도를 이어가기 위해 몸을 바꿔 다시 태어나는데, 이를 린포체라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앙뚜는 티베트 캄 지역의 고승인 자신의 전생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고 여섯살이 되던 해 린포체로 인정받아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그런데 린포체 규율 상 환생 전 지냈던 사원의 제자들이 그를 찾아와 모셔가야 하는데, 앙뚜의 전생이 살았던 티베트는 중국에 의해 국경이 막혀 있는터라 앙뚜를 찾아온 제자들은 아무도 없다. 결국 앙뚜는 지내고 있던 라다크 사원에서 쫓겨나게 되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앙뚜를 보필하던 노스승 우르간만이 앙뚜의 뒤를 따른다. 




지난 27일 개봉한 <다시 태어나도 우리>(2016)의 원제는 <앙뚜>였다. 앙뚜는 티베트 고승이 환생한 린포체 이지만 중국의 티베트  탄압에 가로막혀 전생에 살던 사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린포체는 환생 전 사원으로 돌아가야 사람들로부터 진정한 린포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전생의 사원을 찾지 못하는 앙뚜는 린포체로서의 정체성도 의심받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위기에 몰린 어린 린포체 앙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이는 오직 앙뚜의 스승 우르간 뿐이다. 5살 앙뚜가 동자승으로 사원에 들어올 당시부터 린포체임을 한 눈에 알아본 우르간은 위대한 린포체로 거듭날 앙뚜의 자질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앙뚜가 훌륭한 린포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임을 자처한 우르간은 앙뚜를 위한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감내한다. 




자신의 사원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앙뚜를 다독이며 이것저것 챙겨주는 우르간은 앙뚜의 스승이자 헌신적인 보호자이다. 우르간은 앙뚜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바라지 않는다. 우르간의 유일한 목표이자 꿈이 있다면 앙뚜가 훌륭한 린포체가 되는 것. 어린 앙뚜가 자신의 사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또한 더 큰 고승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작년 DMZ국제다큐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만 하더라도 <앙뚜>라는 제목으로 공개되던 영화는 공식 극장 개봉에 맞춰 <다시 태어나도 우리>로 타이틀을 바꾸기 이른다. 어린 린포체의 성장을 돕는 스승 우르간의 이야기를 강조하고자하는 목적이 커 보인다. 실제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장면은 앙뚜를 위한 우르간의 묵묵한 헌신에 집중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사원을 찾지 못하는 앙뚜를 두고 린포체가 아니라고 수근거려도 앙뚜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놓치 않는 우르간은 끝내 자신의 사비를 털어 앙뚜의 사원을 찾아주는 먼 여정에 나선다. 




예상대로 중국에 의해 막혀있는 티베트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그럼에도 우르간은 앙뚜의 사원을 찾아주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설령 지금 당장은 앙뚜만의 사원을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사원을 찾고 훌륭한 린포체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을 것을 굳게 믿는다. 티베트 불교 승려들을 다룬 <다시 태어나도 우리>가 종교를 넘어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앙뚜는 린포체로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사원을 찾지 못하고 기나긴 방황을 이어나간다. 사원을 찾지 못하는 일이 길어지다보니 자신이 린포체라는 확신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늘 앙뚜 곁을 지키는 스승 우르간은 앙뚜가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를 굳건히 잡아주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어린 앙뚜의 투정을 다 받아주면서 화가 날 법도 하지만, 우르간은 한번도 그 흔한 짜증조차 내지 않는다. 자기보다 더 법력이 높은 고승을 모신다는 종교적 이유가 크겠지만 앙뚜를 대하는 우르간의 모습은 자식을 위해 온갖 일도 척척해내는 우리네 부모를 보는 것 같다. 


자신의 품 안에서 앙뚜를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던 우르간은 앙뚜의 장래를 위해 먼 곳으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우르간 또한 앙뚜와의 이별이 쉽지 않겠지만 앙뚜의 성장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린포체들과 달리 쉽사리 사원을 찾지못하는 앙뚜를 보고 조바심을 낼 법도 하지만 오히려 우르간은 앙뚜를 다독이며 사원을 찾기 위한 고된 여정을 이어나간다. 그런데 우르간과 앙뚜를 바라보는 카메라가 앙뚜를 대하는 우르간의 태도와 매우 닮아 있다. 총 제작기간 9년은 앙뚜와 우르간이 함께 했던 긴 시간을 성실히 담아낸 인내심의 산물이다. 애초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시작은 티베트 의학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다큐멘터리 제작 중 라다크의 시골 의사였던 우르간을 알게되고 항상 그의 옆에 있는 앙뚜에게 매료되어 그에 관한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매번 카메라를 들 때마다 상황이 악화되어가는 앙뚜의 현실에 화도 나고 서글픔이 밀려올 법도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카메라는 고요하면서도 정갈하다. 그래서 앙뚜와 우르간이 겪는 절망과 희망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카메라는 자기가 먼저 울거나 분노하는 법이 없다. 카메라는 말 없이 앙뚜와 우르간을 보여줄 뿐, 이들에 대한 감상과 태도는 오롯이 관객들의 몫이다. 앙뚜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스승 우르간처럼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카메라 또한 이들의 앞날을 위해 섣불리 그들의 현실에 개입하지 않는다. 따뜻한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며 이들의 앞날을 응원하는 것으로 감독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이러한 감독의 진심이 고스란히 다가와 그 어떤 영화의 한 장면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카메라로 찍는 인물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면서도 마냥 아름답지 않은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준 촬영과 스토리텔링 기법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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