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후암동에 살던 김보람 감독은 어느 날 공터에 묶어 있던 늙은 개 한 마리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 개가 어디에서 왔고 언제부터 그 곳에 살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진 감독은 동네 주민들에게 개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개의 전사가 궁금하면, 주인을 찾아 그에게 자초지총 이야기를 들으면 될 터인데, 감독은 구태여 그 개에 대해서 딱히 관심도 없을 것 같은 주민들에게 개의 역사를 묻고자 한다. 한 눈에 봐도 사연이 많아 보이는 개를 대상으로 SBS <세상에 이런 일이>, <TV 동물농장>과 같은 방송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 같기도 한데, 정작 감독의 관심은 백구라 불리는 개에게만 쏠려있지 않은 것 같다. 감독이 백구의 안부와 역사를 묻는, 지나가는 모든 동네 사람들이 감독의 관심대상이다. 




Ⅱ. 지난 5월 극장에서 <개의 역사>(2017)를 처음 봤을 때, 이 영화에 대해서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재개발을 앞둔 후암동 이라는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늙은 개를 매개로 훗날 감독이 홍은동에서 만나게 되는 이웃 할머니, 감독 자신의 이야기로 확장해나가는 스토리텔링 방식은 흥미 롭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 일단 감독이 촬영하고 영화에 사용한 푸티지들에 대한 불만(?)이 컸다. 다수의 독립다큐멘터리에서 보여 지는 거칠고 투박한 영상의 결 이런 것을 떠나서, 감독의 카메라가 정작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Ⅲ. 하지만 <개의 역사>는 이 영화에 대한 나의 박한 평가를 비웃기라도 한 듯,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 받았고, 관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올해의 다큐’로 입지를 굳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나는 그리 좋게 보지 않았던 <개의 역사>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비결을. 운명의 장난인지 독립영화 쇼케이스 리뷰 및 진행을 이유로 <개의 역사>를 다시 보게 되는 기회가 있었고,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개의 역사>를 재 관람 하였다. 


Ⅳ. 지난 6개월 동안 나에게 무슨 거대한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것일까. 6개월 만에 다시 본 <개의 역사>의 푸티지들은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난 5월의 평가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장면 하나하나들이 흥미로웠다. 그 장면들이 다소 투박하고 거칠게 보이기도 하지만, 김보람 감독은 감독 자신과 주변인들이 촬영한 영상, 어떻게 보면 무의식을 기반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 영화적 구성으로 자신이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서스럼  없이 털어놓고 있었다. 다만, 관객의 한 사람이었던 내가 감독의 이야기에 미처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그 뿐이다.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김보람 감독들은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아주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어요. 사건에 충격에 받은 사람들과 언론들은 5개월 동안 살인사건 이야기만 했어요. 그런데 지난 5개월 동안 살인사건 외에 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굉장히 중요한 다른 일들도 많이 일어났을 거예요.” 그러면서 그러한 감독의 목소리를 보이스 오버 처리하면서 등장한 후암동의 일상 풍경. 감독이 <개의 역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우리가 살면서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사소한 것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주 중요한 무언가로 기억될, 이름 없는 것들의 찾지 못할 이름들의 풍경이다. 


Ⅴ. <개의 역사>를 다시 보고 난 이후, 나는 6개월 전과 달리 이 영화에 대해서 다른 평가를 내리게 된 내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다. 일단 나는 지난 9월 한국독립영화(한독협)에서 주최하는 여성주의 영화 세미나 발제를 맡게 되면서 여성주의(페미니즘) 시선을 가진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당시 발제에서도 <개의 역사>를 여성주의 시선이 보여 지는 다큐로 소개하긴 했지만, 이 영화에 대한 감흥이 크지 않았던 탓에 “전형적인 사적 다큐멘터리 형식을 띄고 있으면서 동시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감독이 경험한 바를 자유롭게 풀어내는 에세이적 요소가 다분한 다큐멘터리이다. 또한 30대 여성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 외에도 개발과 성장의 논리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난 여성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여성주의 다큐멘터리로 평가할 수 있다.” 정도만 언급하고 넘어갔다. 


도무지 몇 마디의 문장으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 <개의 역사>의 내용을 단순 요약하면 이럴 것 같다. 후암동에 살았던 늙은 개에게 관심을 가진 감독이 홍은동에 거처를 옮긴 이후 그 곳에서 후암동의 백구처럼 기구한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이웃 할머니에게 카메라를 돌린다. 그리고 감독 자신이 살아왔던 지난날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게 <개의 역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던 개가 비단 후암동 백구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아름 사연 알고 살아가는 독거노인이 비단 홍은동 이웃 할머니만 있는게 아닐텐데, 왜 굳이 감독은 그 많고 많은 대상 중에 그들에게 카메라 포커싱을 맞췄을까. 


그런데 <개의 역사>를 유심히 보다보니, 감독은 후암동 백구와 홍은동 할머니를 찍는 와중에도 그들 주위를 부유하는 이름 모를 대상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다. <개의 역사>에는 감독을 포함 특정인의 이름이 호명되지 않는다. 후암동에 살았던 백구는 그 이름에 별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흰색 잡종 개라 백구라고 부르는 것뿐이다. 감독의 카메라에 잠깐 스쳐갔던 사람들 빼고, 감독과 일정기간 교류를 맺었던 홍은동 할머니는 이름 정도 알려줄 법도 한데, (카메라를 통해 옛날 잡지에 실린 할머니의 이름을 잠시 비추긴 한다) 감독은 끝까지 그녀의 존재를 무명으로 처리한다. 




분명 이름이 있지만, 이름 없이 살아가는 존재들. 감독이 그녀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기 전까지, 홍은동 할머니는 홍은동의 한 원룸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독거노인이었다. 감독의 촬영에 응한 이후에도 홍은동 할머니는 여전히 홍제동의 원룸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할머니이다. 감독 역시 촬영이 마칠 때까지 그녀의 일상은 크게 바뀐 게 없었다. 열세 번째 이사로 후암동에 잠시 살게 된 감독은 열다섯 번 째 이사로 후암동 이후 잠시 살았던 홍은동을 떠난다. 감독이 온전한 자신의 집에 정착하여 살지 않는 이상, 서울 여기저기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감독의 삶은 계속 이어질 듯하다. 


Ⅵ. 다시 나의 이야기를 돌아와, 지난 6개월 전과 다르게 <개의 역사>를 바라보는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자 한다. <개의 역사>를 만든 김보람 감독과 나는 30대 중반의 비슷한 또래 여성, 독립영화계에 몸담고 있다는 점 외에 별다른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다. 지난해 직장 때문에 몇 개월 간 부산에서 혼자 살았던 것 외에 한시도 부모와 떨어져본 역사가 없는 나는 지금도 부모의 집에 얹혀 살고 있으며, 개를 비롯한 반려 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다. 지난 5월 <개의 역사>를 처음 봤을 때 이 영화에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것도 30대 여성이라는 것 외에 감독과 특별한 공통점이 없었던 나의 전사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 이 글을 통해서 솔직히 인정하겠다. 나는 보기보다 주변 상황에 무심하고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리는 습성이 있다. 굉장히 말이 많고 주변 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만 관심을 쏟았다. 오히려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 살인사건, 촛불집회 등 수많은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국적인 사건에 크게 관심을 두었다. 거리를 걷거나 버스를 타면서 거리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 뿐이었다. 


그러나 김보람 감독은 달랐다. 그녀는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풍경과 얼굴들에 관심을 가졌고, 그들에게서 이따금씩 보여 지는 미세한 행동, 표정 변화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아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사려 깊은 태도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다. 물론 그 모습을 본 누군가는 감독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왜 그런 것(백구) 같은 것을 찍어요. 좀 더 생산적인 것을 찍어요.” 그런데 과연 카메라가 담아낼 수 있는 생산적인 일이 무엇일까. 수천만의 국민들이 함께 했던 촛불집회? 수많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살인 사건? 비리로 얼룩졌을 것 같은 전직 대통령을 단박에 옭아맬 수 있는 결정적 증거들? 당연히 우리가 결코 무심코 지나쳐서는 안 되는 중대한 사건이며, 카메라가 마땅히 기록하고 취재해야할 대상이다. 그런데 그러한 굵직한 사건들이 온 나라를 뒤흔드는 동안 그에 버금가는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오랫동안 키우던 개의 죽음. 누군가에게는 너무 흔한 일이어서 눈길조차 안가는 지극히 사소한 일이지만, 그 개를 땅 속에 묻어야하는 주인은 세상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허망하다. 내가 지난 3년 동안 가장 듣기 싫었던 말. “사람은 누구나 죽은데, 유독 세월호에 과민 반응하는 것이 아니냐. 잊어라. 잊고 싶다.” 세월호는 워낙 침몰원인에 대한 미스터리가 많기 때문에 계속 잊지 않고 진실을 규명해야하는 국가적인 재난으로 간주되긴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최근까지 세월호 진실을 밝히고 싶었던 유가족과 세월호를 잊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을 향한 폭력의 언어들. 이 또한 지난날의 풍경으로 스쳐 지나갔지만 여전히 상처로 맴도는 말들. 세월호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죽음이 살아있는 우리들을 힘들게 한다. 


Ⅷ. 우리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죽는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은 끝이 보이기 때문이다. 한번 스쳐 지나가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찰나의 순간들. 이제는 기억 한 편에 찌그러져 자리 잡고 있던 나의 어린 시절, 학창시절이 그랬고 누군가 때문에 아파했고 힘들어했던 최근 일 년 간의 시간이 그랬다. 




그 때는 미처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이제는 붙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저 멀리 떠난 것들을 추억하며 나 또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나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현재의 나를 쉽게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대신, 나 스스로가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살기로 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감독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싶다던 <개의 역사> 또한 미완성으로 남았다. 사실, 우리의 삶 자체가 불확실하고 당장 코앞에 닥칠 일도 모르겠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와 내 주변 상황에 귀 기울이며 곧 사라질 지워지는 시간들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 그렇게 영화 속에서만 맴돌던 백구가 내 곁으로도 돌아왔다. 


*지난 7일 열린 독립영화 쇼케이스 <개의 역사> 리뷰 입니다. / 내년 2월에 한독협에서 발간되는 독립영화 쇼케이스 자료집에서도 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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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캐나다에서 미국 동부 해안선을 따라 키웨스트, 플로리다를 잇는 미국 1번 국도(Route 1)는 1936년 세계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도로였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로버트 크레이머 감독의 눈으로 본 미 1번 국도는 미국에서 오래되고 낙후된 지역의 하나다. 


도로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한동안 미국을 떠나 방랑자처럼 살았던 크레이머  감독은 자신이 예전에 만든 극영화 <닥의 왕국>(1987)의 주인공이자 감독의 분신 닥(폴 막이작 분)을 내세워 미 1번 국도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로 담고자 한다. 




제목 그대로 <미 1번 국도>(Route One USA, 1989)를 다루고 있는 영화는 1930년대만 해도 가장 번성한 도로였으나 50년이 지난 1988년에는 고속도로 옆의 낡고 허름한 도로가 된 '미 1번 국도'를 바라보고자 한다. 


감독의 관심사는 도로 그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낙후된 도로 옆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미국을 떠나 유럽을 떠돈지 10년 만에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으로 돌아온 크레이머 감독은 그가 오래 살았고 잘 안다 생각하는 뉴욕을 등지고 자신이 잘 모르는 미 1번 국도 주변을 떠돈다. 


1988년 크레이머 눈으로 바라본 '미 1번 국도'는 훗날 지어진 고속도로 옆에서 나란히 지역과 지역 사이를 잇는다. '미 1번 국도' 지역을 그저 낙후된 지역으로만 여겼던 크레이머 감독은 약 5개월 가량 주행 끝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과거를 거니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미국의 진솔하고 역동적인 단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24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미 1번 국도 주변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카메라로 기록한 감독은 그들을 통해 레이건 시대를 살고 있는 미국을 보고 의사로 설정된 닥을 빌러  미국 사회를 검진하고 관찰하고자 한다. 


크레이머 감독의 분신인 '닥'이 현실을 살고 있는 '미 1번 국도'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미 1번국도>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두루 오간다. '미 1번 국도' 주변을 살피는 크레이머의 카메라는 유려하면서도 그가 바라보는 80년대 미국의 현재를 낱낱이 살핀다. 




닥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미 1번 국도' 주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미 1번 국도>는 레이건 이후 신보수주의 물결로 물든 미국 사회를 해부하고 고찰한다. 이러한 현실을 목소리 높여 비판하는 대신, 카메라를 든 크레이머는 80년대 후반 미국 사회를 바라보고 조용히 응시한다. 카메라를 통해 기록된 그 주위의 현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사색적인 영화다. 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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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9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과 관객상을 수상한 오정훈 감독의 <벼꽃>(2017)은 경기도 파주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부(이원경)의 모습을 밀착 촬영한다. 별다른 내레이션 없이 농부가 벼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벼꽃>은 농부를 둘러싸고 있는 농촌의 풍경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보는 이를 감탄하게 만드는 농촌의 아름다운 풍경은 농작물을 재배하고 수확하기 위해 매일 치열하게 살아가는 농부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일상일 뿐이다. 그렇게 자식을 기르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농작물을 가꾸어왔지만 농부들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그들이 들인 노력과 헌신에 비해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벼꽃>은 친환경으로 벼농사를 짓는 한 농부의 농사 과정과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벼의 성장 순환 과정을 고찰한다. <벼꽃>을 연출한 오정훈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하늘과 땅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벼의 일생과 쌀에 대해서 깊게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에도 여실히 드러나지만, 벼의 성장과 관련된 어떠한 것도 농부의 섬세한 손길을 거치지 아니한 곳 없다.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쌀 한 톨 한 톨 모두 농부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베어 있다. 


농부의 손길을 거쳐 쌀로 변모하는 벼의 이야기를 담은 <벼꽃>은 벼의 성장과 그 벼를 키우는 농부의 모습만 보여주지 않는다. 벼와 농부의 곁에 항상 있지만, 그들이 미쳐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가곤 하는 일상의 풍경까지 포착 하며 아름다운 에세이 필름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자 한다. 


<벼꽃>은 농촌의 평온하고 아름다운 풍경만 예쁘게 담아내지 않는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일상에 숨겨진 농촌의 하루는 치열하고도 고된 과정의 연속이다. <벼꽃>은 벼를 얻기 위해 농부들이 얼마나 수고로운 행위를 반복하는 지를 구태여 감독의 목소리로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오직, 농부와 벼와 농촌의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할 뿐이다. 


그 속에서 벼는 무럭무럭 자라고 어느덧 의젓한 벼로 탈바꿈 되지만, 농부의 삶은 여전히 고되고 그들의 노동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자식같은 농작물들이 걱정되어 한시라도 자리를 비울 틈새가 없는 농부들은 거리에 나오고, 자신들의 노동과 땀과 노력을 들어 정성스럽게 키운 농작물들이 제대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그들은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고 농부의 노동과 농작물의 소중함은 존중받아야한다. 농부의 노동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노동 또한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벼꽃>은 벼의 성장을 통해 땀을 흘려 일하는 노동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을 존중하고자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관객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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