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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홀리모터스’. 레오스 카락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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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3년 만이다. 2008년 단편 <광인>, 봉준호, 미셸 공드리와 함께한 옴니버스 <도쿄!>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신작을 내지 못한 레오스 카락스의 공허한 필모그래피는, 여전히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감흥을 잊지 못하는 씨네필 에게는 두고두고 아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13년의 긴 침묵 끝에 세상에 내놓은 <홀리 모터스>는 일찍 피다 져버린 천재를 아쉬워하는 이들의 갈증을 단박에 해소하는 최고의 걸작이었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그랬듯이, 단순히 영화를 만드는 차원을 넘어 영화 자체를 가지고 노는 레오스 카락스의 천부적 감각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레오스 카락스의 영원한 페르소나 드니 라방과 함께한 <홀리 모터스>의 내용은 단순한 편이다. 한 남자가 고급 리무진 홀리 모터스에 타는 순간, 단 하루 무려 아홉 개의 인생을 보여준다는 설정은, 흡사 아홉 개의 옴니버스 극을 보는 기분이다. 





<홀리 모터스>에서 오스카로 분한 드니 라방은 가정적인 유능한 사업가에서 걸인, 미녀 모델을 납치하는 광인, 광대, 죽어가는 노인, 암살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소화해낸다. 같은 인물과 연기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역할에 몰입하는 오스카는 어떤 상황과 순간에서도 주어진 인물을 실감나게 보여줘야 하는 배우 그 자체다. 


하지만 <홀리 모터스>는 단순, 하루에 무려 아홉 개의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의 애환을 드러내고자하는 영화가 아니다. 연이은 인터뷰에서 레오스 카락스가 <홀리 모터스>에 대한 평단의 질문을 두고, “영화의 언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영화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라면서 강하게 부인한 것처럼, <홀리 모터스>의 오스카는 주어진 역할에 대한 연기를 넘어 종종 가면 뒤에 가려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의 경험에 포커스를 맞춘다. 





처음에는 연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 일을 시작했으나 이제는 자신의 현실과 가상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주어진 대로의 삶에 충실할 뿐인 오스카의 가면 인생은 “우린 누구였나?”라는 노래와 함께 가상 세계 밖의 현실 사람들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비록 가상의 역할을 보여줘야 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의 오스카의 감정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오스카와 달리, 나만의 인생을 영위하고 있다 자부하면서도, 실상은 세상과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나의 삶은 과연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면서 살아가는 아바타와 다를 바가 뭔지 진지하게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글쓴이의 얄팍한 지식과 조약한 글쓰기 실력으로는 도저히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다. 글쓴이같은 사람들은 어디가 실제 오스카이고, 가상의 오스카인지 명확하게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는 <홀리모터스>가 각종 언론과 평단 사이에서 2012년 최고의 영화로 추앙받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홀리모터스> 자체가 그랬던 것처럼 표면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다. 글, 말로는 미처 다 표현할 수 없지만, 대뇌의 전두엽은 물론 심장까지 강하게 자극하는 영화를 동시대에 만난다는 것은 영화에 제대로 미쳐버린 씨네필 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지난 13년의 절치부심 끝에, 영화로서 영화를 훌쩍 넘어버린 레오스 카락스의 진정한 귀환이 실로 반가운 이유다. 


한 줄 평: 영화로서 영화를 뛰어넘는 레오스 카락스의 돌아온 천재성 혹은 누구나 탐낼법한 완벽한 페르소나 드니 라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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