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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전망대

MBC 스페셜 임재범,김태원,김도균 락커로서 자존심을 버리고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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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말 임재범이 음악을 다루는 주말 예능 버라이어티에 서게 되었을 때, 분명 저 사람은 임재범이지만, 앞에 두고도 과연 그가 임재범이 맞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대중들에게 임재범은 음반만 내기만 하면 잠적하는 가수,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가수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가 실력파 가수들을 재조명한다는 취지의 '나는가수다'에 출연을 하겠다고 했을 때 만감이 교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음반으로만 들을 수 밖에 없었던 그의 라이브를 들어서 영광 그 자체에 설레인다는 기분이 앞섰지만, 오죽하면 그 양반이 '나는가수다'에 나올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하였습니다. 하긴 그건 임재범뿐만이 아니라 임재범과 함께 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가수들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다들 대한민국 가요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전설들이고 아직 현역들인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예능을 통해서 다시 대중들의 주목을 받게된다는 개탄스러운 현실에 일조한 대중으로서 미안함이 앞섰을 뿐입니다. 

거기에다가 임재범이 자기가 '나는가수다'에 출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듣고 잠시 목이 메여지더군요. 그는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처절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암투병을 하고 있는 아내, 난방비가 없어서 어린 딸과 함께 추위와 사투를 벌어야하는 생활고. 게다가 임재범의 아버지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 아나운서 출신이시기에 그 충격은 이루말할 수 없었습니다. 1986년 그룹 시나위로 데뷔하자마자 한국에서는 전혀 나올 수 없는 목소리, 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보컬 수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단지 락커로서 자존심을 지켜왔다는 이유로, 그리고 주류 가요계의 질서 지키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점점 잊혀져가는 한국 락의 전설로만 기억되는가 하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나는가수다' 단 한회 출연 만에 엄청난 관심을 받으면서 단숨에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별이 되어버립니다. 세상은 임재범에 대한 열광을 '임재범 신드롬'이라고 명명하였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조리 다 뉴스거리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병 또한 많이 호전되었구요. 그렇게 임재범은 자신의 엄청난 외도로 자신이 가족이 행복을 찾았다면서 애써 위안지으면서 씁쓸한 미소를 애써 감추고자 합니다. 



한 때 임재범도 86년에는 그와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록그룹의 보컬로서 어깨를 겨누던 이승철, 유현상처럼 머리를 자르고 락이 아닌 발라드를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1986년 시나위, 부활, 백두산이 큰 위세를 떨치던 시기가 지나고 락의 위기가 다가왔을 때, 백두산의 기타리스트인 김도균과 손을 잡고 락의 본고장이자 산실인 영국에도 진출하여 그곳에서  'sarang'이라는 그룹도 결성하고 1990년에는 한국을 넘어 세계를 지향하는 '아시아나'를 결성하였지만 참패를 당하고 울며겨자먹기로 선택한 일이였습니다. 그가 락을 버리고 '이밤을 지나면'이란 곡으로 주류 가요계로 편입했을 때 그 반응은 먼저 발라드 가수로 전향한 이승철 못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얻게 되었지만 한 때 동고동락했던 락커들의 싸늘한 시선에 괴로워해야했습니다. 아니 자기 스스로 자기가 하고 싶은 락이 아닌 다른 음악을 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 뒤 그는 음반을 내자마자 잠적을 하고 그런 임재범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이 세상은 그에게 '기인'이라는 단어를 붙이면서 점점 임재범은 외톨이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로 자존심을 지킬 수 밖에 없었던 김태원의 상황 또한 심각하기는 매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보컬 이승철이 떠나고 배고품과 추위보다 자신의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없다는 자괴감이 빠진 김태원은 더욱더 나락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할 일도 하였고, 더욱더 그의 삶은 위태위태해져가만 갔습니다. 절치부심으로 2002년 한 때 부활의 보컬이였던 이승철과 다시 손을 잡고 스테티셀러인 '네버앤딩스토리'를 내놓으며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는가 했더니 그 뿐이였습니다. 결국 김태원은 사석에서 자신의 독특함 입담을 눈여겨보던 김구라의 권유로 예능 출연 몇번으로 망가집니다. 그리고 천부적인 기타, 작곡 실력과는 달리 국민 약골 이윤석 못지 않게 약하고 골골거리는 그에게 '국민 할매'라는 새로운 예명이 붙어지게 됩니다. 그 후 그는 데뷔 첫 이래 cf를 찍는 등 대중들이 사랑하는 최고의 스타로 거듭나게 되었고 최근에는 대국민 오디션 '위대한탄생'에서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멘토로 국민 할매가 아닌 또다른 모습으로 주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오랫동안 지켜온 락커로서 자존심을 버리고 국민할매로까지 변신한 것은 단순히 돈때문만은 아니였습니다. 그에게는 김태원 부부보다 하루 더 먼저 죽길 바라는 마음이 아픈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아들을 두고 '나는 락커다' 하면서 손가락만 빨 수만은 없는 현실이였습니다. 

 


이들과는 달리 아픈 가족도 없이 48년동안 내내 싱글생활을 유지해온 김도균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꽤 오랫동안 기타만 치고 살아온 김도균 또한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와 결혼 이후 야들야들한 트로트 가수로 대한민국 가요사에 가장 가혹한 변신을 꾀한 이후 다시 락커로 돌아온 유현상과 함께 예능 '세바퀴'를 통해서 일생일대 최고의 외도를 감행하게 됩니다. 덕분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다시 늘었습니다. 어떤 이는 한 때 백두산을 좋아했다면서 그에게 정중히 악수를 청하기까지 하였습니다.  26년전 대한민국 땅에서 정통 헤비메탈을 추구했던 백두산에게 열광하였으나 그 뒤 백두산을 너무나도 빨리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백두산의 재결합, 그리고 꿋꿋이 이어가는 그들의 활동은 오랫동안 잠자코 살아오던 사람들의 마음의 강렬한 불씨를 피어오르게 합니다. 

김태원 역시 예능 출연을 통해 흔히 말하는 락커로서의 지조는 잃었지만, 그 때문에 김태원, 그리고 락을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다시 부활 노래를 듣게 하고 전반적으로 락에 대한 관심을 불러모으는데 큰 성공을 하게 됩니다. 오랜 은둔 생활을 뒤로하고 가족들 때문에 다시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임재범의 등장 이후 사람들은 그가 활동했던 '시나위', '아시아나'에게까지 큰 관심을 가지게되었고 이 여세를 모아 절판되었던 '아시아나' 음반이 다시 재발매된다고 할 정도입니다. 특히나 시나위, 부활, 백두산, 아시아나 등으로 대변되던 전성기 시절 갓난 아이이거나 그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10대, 20대들의 상당수가 그들의 음악을 받아들이고 열광한다는 점은 더할 나위 없는 수확입니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으로 대변되던 락이 수면 위에 떠오르게된 것은 순전히 그들의 음악을 듣고 열광을 하던 청춘들 때문입니다. 서슬 파란 독재시절 점점 억누리면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은 자신들을 대변하여 이 부조리한 세상에 사우팅을 하던 락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자꾸만 커져가는 그들이 두려웠던 기성 세대들은 어떻게든 그들을 잠재우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진압하고자 합니다. 그 결과 그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들 중의 일부는 현실과 타협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락커들은 반지하 단칸방과 굶주림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더이상 그들의 음악에 열광해주는 팬과 음악을 할 수 밖에 없는 무대가 없다는 것이였습니다. 

결국 락커로서 맞지 않다면서 그들에게 들어오는 모든 대외활동을 거절할 정도로 꿋꿋하고 살아오던 그들은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변신을 거듭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능에서 어설픈 몸짓으로 망가지고 노래를 부르다가 대중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있어도, 결코 자신들의 음악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연습과 공연이 아닌 다른 일에 참여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여전히 그들은 계속 손에 기타를 놓지 않으며 락을 잘 모르는 대중들 앞에서 '락'만이 가지는 고유의 매력과 즐거움을 알려는데 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족과 락을 위해 신성처럼 여겨왔던 락커로서의 자존심을 버린 대가는 어마어마하였습니다. 이제는 공중파 다큐멘터리에서 대한민국 락을 다시 재조명하고, 많은 이들이 그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가요계를 넘어 이 시대의 거물이 되어버린 임재범과 김태원입니다. 한 때 그들의 외도를 두고 울분을 토하고 비이냥을 거리던 시선들이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 덕분에 다시 '락'이라는 장르가 주목을 받고 락커들이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어있는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쾌거입니다.

몇 십년 동안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락을 버리지 않고 락의 발전에 가족을 뒤로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뮤지션들입니다. 이제는 우리 대중들이 가족과 락을 위해 망가짐까지 자처하는 그들의 열정과 희생에 화답을 해야할 시기입니다. 단순히 임재범,김태원 개인과 그들의 사생활에만 주목하는 일시적인 신드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기회를 발판으로 그들의 음악은 물론이고 락이란 장르 자체에 전반적으로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한 평생을 락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임재범과 김태원을 존경하고 위하는 법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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