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적도의 남자>는 첫회에서부터 마지막회까지 집중해서 지켜본 얼마 안되는 드라마였습니다. 그간 많은 드라마를 보았지만, 이번 <적도의 남자>만큼 극중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통이 내 아픔인양 아프고 먹먹해졌던 적은 그닥 많지 않았거든요.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고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눈까지 멀게된 선우(엄태웅 분)이 어서 빨리 시력을 회복하고, 그의 아버지와 눈을 앗아간 이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바랬지만, 한편으로 그의 뒤통수를 내리칠 수 밖에 없었던 장일(이준혁 분)도 짠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저에게 이장일이란 아이는 춥고 외롭고 불쌍한 남자여야한다 그래야했던 것 같아요. 


'애증'. 모든 인물들이 다 하나같이 사연있고 외로운 <적도의 남자>에서 가장  간단하면서도 모든 희노애락이 압축되어있는 한 단어로 표현되는 등장인물이 있다면 단연 '이장일'이 아닐까 싶어요. 그간 그가 저지는 악행을 보면 쉽게 용서할 수도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되지만, 인간 그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장일이만큼 춥고 외롭고 불완전한 아이가 또 있을까 싶기도 했거든요. 





조각처럼 빼어난 외모, 대한민국 최고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수많은 국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스타검사. 겉으로 보기에 그는 모든 것을 다 갖추고 모든 사람들이 다 부러워할만한 엄친아였습니다. 하지만 김선우의 눈을 통해서 바라본 이장일은 15년 전 아버지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친구를 죽이려고 한 살인미수자, 철저히 가식으로 일관된 악어였습니다. 힘없는 서민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검사가, 정작 자신이 가장 아끼는 친구를 무참히 짓밟아버린 죄가 드러날 때는 어떻게하면 검사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기만 했으니까요. 


한 때는 이장일이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장일을 쭉 봐왔기에 그가 얼마나 슬픈 아이인지 대충은 알고 있었기에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 놓지 못해서 그렇지 늘 항상 선우의 뒤통수를 친 것에 미안하고, 아파할거야라고 말이죠.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알고 있던 이장일이 아니라 괴물이 되어버린 이장일은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나쁜 애, 선우에게 복수당해야 마땅한 죽일 x,,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이장일이란 인간을 잘못 알고 있었구나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장일은 자신의 직업이 검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15년 전 친구에게 얼마나 몹쓸짓을 저지렀는지도 모르는 철면피인데 그에 대해서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불쌍하니 마니 했던 제가 아직 세상을 덜 살았구나하는 어리석음까지 느끼더군요.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고 15년 전 김선우가 되서야 자신이 얼마나 죽을 죄를 지었는지 깨닫고 선우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장일을 볼 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만약에 장일이 선우에 의해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과연 자신의 죄를 뉘우쳤을까 하는 의문말이죠. 


그래서 선우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선우 또한 이를 받아주었음에도 불구하고 15년전 자신이 선우의 뒤통수치는 환영을 보고 그 때 선우를 밀어내린 절벽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 장일의 최후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봐요. 비록 법적인 처벌은 면했고, 피해자에게 용서는 받았다고하나, 그를 향한 신의 응징은 별개니까요. 


어찌되었던 장일은 15년 전 범죄행위로 옥에 갇히는 대신, 살아도 죽은 것과 같은 식물인간이 되었고, 15년 전 선우가 자신과 아버지 때문에 당했던 고통 고스란히 떠안고 지옥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래도 그가 지난 15년 동안 선우에게 한 행동을 생각하면 여전히 더 돌려줘야할 것들이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그는 자신의 15년 전 저지른 행동때문에 철저히 망가졌고 결국 죽음이란 황천길로 떠났으니까요. 드라마 속 이장일보다 더 선량한 사람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음에도 수십년 이상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는 현실 속 누군가들에게 비해서는 톡톡히 인과응보를 받은거죠. 


이장일. 참으로 증오와 미움, 분노, 연민이 번민하는 캐릭터였지만, 그래도 그가 완전히 밉지 않았던 것은, 지난 20회 동안 이장일로 살았던 배우 이준혁의 열연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동안 이준혁이 나온 드라마를 꽤 여러번 보았고, 잘생겼구나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한번도 제 가슴에 와닿지는 않은 탤런트였거든요. 





때문에 그가 엄태웅에 맞서 정통 복수극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엄태웅이야 이미 <부활>, <마왕>을 통해서 복수극의 화신으로 인정받는 명배우라고하나, 이준혁은 아직 검증이 잘 안된 배우였잖아요. 


하지만 이준혁은 그간 내가 알고 있던 이준혁이 맞나 싶을 정도로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감정이입조차 힘든 이장일이라는 희대의 캐릭터를 물만난 고기처럼 생동감있게 표현합니다. 그래서 이준혁이 이장일이 되어 울고, 분노하고, 선우를 경멸할 때 도저히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이준혁이 표현하는 놀라우면서도 섬세한 감정선과 보는 이들을 긴장시키는 진지하면서도 다이내믹한 눈빛에 어느센가 이장일이 되어 한편이나마 그의 사이코적인 성향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적도의 남자> 이장일으로 '좋은 배우'로 성큼성큼 우리 곁에 찾아온 이준혁. 비록 이장일은 실족사로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이장일로 다시 태어난 배우 이준혁의 연기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 아닐까 싶네요. 이장일로 필모그래피에 힘찬 날개를 달은 이준혁. 조만간 군대에 입대한다고 하는데, 군복무 이후에도 활발한 연기활동으로 대중들을 울리고 웃기는 명배우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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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스토리, 연출, 연기는 특별한 흠 잡을 것 없이 완벽합니다. 그래서 10% 중후반 수준의 시청률에 머무르고 있지만 쟁쟁한 배우들이 포진되어있는 경쟁작을 제치고 동시간대 1위에 올렸고,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 김선우(엄태웅 분)이 그토록 이를 갈고 있던 진노식(김영철 분)이 친아버지로 알려지고, 여전히 자신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진 회장이자신이 목숨처럼 아끼는 리조트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선우 애인까지 납치하다가 자신의 아들이 누군지 알게되고 우연히 이 모든 사실을 엿들은 이장일(이준혁 분)이 자신의 아버지가 결국 죽었다고 진노식에게 따지러갔다가 봉변만 당하고 선우네 회사로 가서 이 모든 사실을 폭로하려고도 들어가는구나 싶은 흥미진진하게 돌아가는 상황. 그런데 갑자기 검은 색 화면으로 정지되며 이어 "본 방송사 사정으로 방송을 중단했다."는 황당하기까지한 자막. 도대체 이 말도 안되는 방송사고가 왜 일어난 것일까요?

 

현재 <적도의 남자> 공식 홈페이지에는 <적도의 남자> 19회 방송 중 제작 지연으로 방송에 차질이 빚었다고 이번 방송사고로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 시청자에게 즉각 사과했습니다. 심지어 이번 방송사고로 쏟아지는 기사 내용을 보면, <적도의 남자>는 마지막회가 방영하는 오늘까지 촬영일정이 잡혀있다는 소문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타 드라마처럼 생방송 촬영 일정을 진행하다가 마지막 테이프의 편집과 전달 과정의 지연으로 방송에 차질이 빚어져서 방송사고가 발생했다고 추측해볼 수 있겠군요.

 

거기에다가 현재 <적도의 남자>가 방영되고 있는 kbs는 대다수 아나운서를 제외하곤 PD 등 현장 인력들이 부분 파업 중이라 방송 제작 환경이 원활하지가 않구요.

 

 

하지만 어떤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던지 간에, 뜬금없이 발생한 이 방송사고에 한순간에 아버지를 잃어버린 장일이처럼, 아니 자신이 그토록 무너뜨리고 싶었던 진노식을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로 인정해야하는 선우처럼 시청자들도 강한 '멘붕' 상태입니다. 가장 무엇보다도 염려되는 것은 시청률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 동시간대 꼴찌에서 엄태웅의 연기와 극의 완성도만으로 힘겹게 동시간대 1위를 수성했는데, 말도 안되는 방송 사고로 유종의 미에 금이 가게 생겼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가장 클라이맥스로 치닫을 때 후다닥 끝나지만 않았어도 비교적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 19회였기 때문에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방송사고가 뼈아플 뿐입니다.




 

19회에서 진노식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밝혀져도 여전히 진 회장을 향한 복수를 멈추지 않는 선우. 비록 공소시효는 지나 15년 전 선우 양부 살해사건에 연루된 노식과 장일 아버지는 그에 따른 형벌은 면하게 되었지만 15년 전 자신의 범행이 알려진 노식은 인생 최대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가뜩이나 선우와 문태주를 이기겠다는 질투심에 무리하게 광산 개발에 뛰어들었다가 경영권마저 악화된 상황인터라 노식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엎친데 덮친 격이죠.

 

하지만 적어도 주주들은 자신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노식. 그런데 주주들마저 자신의 대표 해임권에 찬성표를 던집니다. 거기에다가 수십년 동안 진노식의 부인으로 살았던 마희정(차화연 분)마저 진 회장에게 등을 돌려버립니다. 아 이거 어떻게 된 일인가요.

 

그런데 알고보니 선우와 마희정 사이에 이미 진노식을 진승그룹에서 몰아낼 모종의 거래가 있었더군요. 평소 여전히 과거 약혼녀를 잃지못하는 진 회장에게 강한 불만이 있었던 마희정은 이번 진 회장의 몰락을 계기로, 자신은 진 회장에게 부인, 사업 파트너가 아니라 오직 돈줄뿐이었나하는 강한 배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얼핏보면 허영심에 들뜬 재벌 사모님이지만 돈 굴리는 머리만큼은 잘 굴러가는 마희정이였기 때문에 이참에 자기 살 궁리를 하는지도 모르겠구요. 결국 마희정 친정 쪽에 진승그룹 경영권을 이양하는 조건으로 마희정과 함께 힘을 합쳐 진노식을 망하게하는데 성공한 선우입니다.

 

선우의 공격이야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 그렇다치고, 믿었던 주주, 특히나 그동안 함께 반려자로 살았던 마희정에게 세게 뒤통수를 맞은 진 회장의 심경. 아마 지금 갑작스런 방송사고를 겪은 시청자와 마찬가지로 정신이 없을 거에요. 하지만 이대로 눈뜨고 당하기만 할 노식이 아니죠. 어떻게든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의 압축판인 태국의 리조트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그는 선우의 연인이자 이번 복수전에 맹활약한 지원(이보영 분)을 납치하는 악랄한 행위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원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바로 노식이 납치했다는 것을 직감하고 오랜만에 진 회장을 찾아간 문태주(정호빈 분). 거기서 태주는 노식에게 "선우가 너의 친아들이니. 이제 그만 좀 괴롭혀."라고 뒤늦게서야 사실을 고백합니다.

 

마희정이 각목으로 내리친 뒤통수보다 더 큰 멘붕상태에 오게된 노식. 거기에다가 우연히 이 사실을 접하게된 장일이 얼씨구나 좋다면서 "역시 무식한게 부자가 닮았네." 하면서 노식을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장일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습니다. 바로 얼마 못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버지가 결국 숨을 거두었거든요. 이게 다 노식 때문이라고, 그를 찾아갔지만 노식은 죄책감을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니 아버지 스스로 잘못이라고 같이 태국가서 날 도와줘. 넌 어차피 변호사 개업도 힘들잖아 하면서 아버지 죽음으로 충격에 빠진 장일을 더욱 열받게 합니다. 이렇게 가장 극도의 긴장감이 조성될 시점에 화면정지되고 방송이 중단되었으니 시청자들의 속이 오죽 타겠습니까.

 

그렇게 아버지 죽음 이후 노식과 대판 싸우고 바로 선우에게 찾아가는 것으로 짐작되는 장면에서 헐레벌떡 끝나 버렸으나, 그나마 불행 중의 다행인 것은, 지난 첫 회 오프닝 장면 덕분에 오늘 방영될 마지막회가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이 되는 거죠. 일단 노식, 선우, 장일은 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노식의 소유가 아닌 리조트에서 결말을 보겠죠. 여기서 주목할 포인트는 19회에서 계속 눈에 띄는 시력 이상을 보여주던 선우가 결국은 노식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의 눈을 찌르는 것에 준하는 결말에 들어갈까가 관건이겠죠.

 

이미 <적도의 남자> 방영 전에 태국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첫 회 장면과 마지막 회 장면을 미리 찍어놓은 것을 보아, 김인영 작가는 <적남> 시작 전에 자신의 뜻대로 결말을 정한 것 같습니다. <발리에서 생긴 일>, <지붕뚫고 하이킥>에 버금가는 충격 결말을요. 하지만 <발리..>, <지붕킥>과는 달리 첫 회부터 비극이 강하게 예상된 드라마이기에 설사 선우가 다시 눈이 먼다해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밤 시청자 눈앞에 펼쳐질 결말보다도 더 충격적인 것은, 불과 한 회를 앞두고 최근 시청자들을 충격과 분노를 야기했던 <패션왕> 막장 결말보다 최악인 마무리를 보여줬던 방송사고가 아닐까 싶네요. 그동안 작품 내적으로는 별다른 하자없이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줬던 <적도의 남자>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방송사고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간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작가, 스태프, 배우들. 그리고 변함없이 <적남>을 사랑해준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찬물을 끼얹은 황당한 방송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요?

 

어제 방영되었던 19회 선우 대사를 빌려 단순 제작진의 실수로 마지막까지 잘 나가던 <적도의 남자>에 제대로 초쳐버린 방송 사고를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19회에서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무너져내려버렸다고 보기에 <적도의 남자>는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명품 드라마로 남을 가능성이 있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부디 오늘 마지막 20회에서는 어제 있었던 최악의 방송사고에 진심으로 사과하는 의미로 심혈을 기울여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며 완벽한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하네요. 아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용서가 안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정한 복수와 화해를 울부짖은 드라마인만큼, 말로만 미안한다 사과한다로 대충 넘어갈게 아니라 끝까지 자신들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에 사과하고 성원해준 시청자들의 애정에 보답하는 명작으로 기억되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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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처음에는 엄태웅의 대표작인 <부활>,<마왕>을 잇는 또하나의 복수극의 명작인 줄 알았습니다. 수백년이 지나도 복수극의 고전으로 각광받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처럼 말이죠. 물론 <적도의 남자>는 악인들에 의해 억울하게 고통받은 주인공이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을 자기가 당했던 그대로 복수하는 패턴을 보여주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결국 주인공 김선우가 최종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강한 목표물은 하필이면 김선우라는 씨앗을 이 세상에 뿌린 진노식(김영철 분)입니다. 


첫 회 한 때 진노식이 경영하던 태국의 한 리조트에서 이장일(이준혁 분)이 노식에게 총귀를 겨누며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선우가 회장님의 친아들이었으면 좋겠지요." 그 때 장일을 말리던 선우. 그 때 선우는 마치 그간에 품었던 원한과 분노를 모두 내려놓고 용서, 안타까움 등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몇 초 안되는 짦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김선우가 살아온 과정을 모두 압축하여 눈빛으로 드러낸 의미심장한 장면이었죠. 


그 때부터 이미 김선우의 친아버지는 진노식으로 밝혀졌는지도 몰라요. 그 이후에도 계속 선우의 친부가 노식이라는 강한 복선과 암시가 깔려있었구요. 다만 맛있는 것은 마지막에 먹는다는 최수미(임정은 분)처럼 이제서야 선우의 친아버지가 노식이라는 것이 확실해졌을 뿐이죠. 


처음부터 선우의 아버지가 노식이라는 것을 짐작하고는 있었고, 그래야 단순 복수를 넘어 인간의 사랑과 미움이 어디까지 갈까라는 다소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는 <적도의 남자> 스토리가 흥미진진해진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선우의 친아버지가 진노식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도 컸습니다. 현재 복수의 화신이 되어버린 선우이지만, 본바탕은 선한 선우을 낳아준 사람이 살아있는 악마 진노식이라고 밝혀지면 엄청난 충격을 받고 다시 눈이 멀지도 모를 선우이니까요. 


아마 진노식도 처음부터 잔악무도한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도 처음에는 그의 아들 선우처럼 선한 피가 흐르고 있었겠죠. 하지만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 때 고통스러웠던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돈과 사람에 대한 집착이 오늘날 아들조차 자신의 아버지임을 부정하고픈 골리앗으로 굳어지게 한거죠. 


어떤 면에서 한 때 자신을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트린 이들에게 자기가 당한 만큼 똑같이 복수하는 선우를 보고 그에게도 진노식의 피가 흐르고 있구나 싶어 놀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간 선우가 노식, 이장일 부자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그들이 15년 전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서 진심으로 뉘우치고 빌었으면 모를까. 그러기는 커녕 오히려 뻔뻔하게 "내가 그 때 선우도 죽였어야했어"라면서 되레 돌아온 선우만 원망하는 뼛속까지 악으로 받친 그들이니까요. 그들에게는 '용서'와 '자비'라는 단어도 사치입니다. 


결국 자식을 잘 키워보겠다는 빙자하에 15년 전 자신의 손으로 선우 양아버지를 죽여놓고도 참으로 떳떳하게 잘 살았던 장일 아버지는 자신과 아들의 과거 범죄가 드러나려고 하던 찰나 그 때 사건과 관련되어있는 노식과 수미 아버지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자살을 택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는 장일은 드디어 살인미수 혐의가 세상에 드러나고 검사직도 내놓고 설상가상 아버지까지 잃을 수도 있는 가장 최악의 벼랑 끝에 내몰려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그 부자들 손에 희생된 선우 부자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있었다면 그들의 끊임없는 추락에 약간이라도 안쓰러운 마음이 있었을텐데, 이미 용서의 한계를 넘어버린 이들이니까요. 


하지만 스스로들 미처버려 자멸을 택한 장일 부자와 달리,  진짜 선우가 무너뜨러야하는 골리앗 노식은 더이상 선우의 손으로 무너뜨릴 수가 없단 말이죠. 진노식을 친다는 것은 선우가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르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예상했던 결말이긴 하지만, 선우의 친아버지가 노식으로 밝혀진 것만큼 허망한 순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막 노식을 향한 선우의 복수에 탄력이 붙었는데 "노식은 선우의 친아버지." 하면서 기어코 찬물을 끼얹고 말았으니까요. 허나 점점 복수를 위한 괴물이 되어가는 선우를 보면 그러면 안되겠지만 여기까지 멈추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노식, 이장일 부자, 최수미 부녀는 결코 용서받아서는 안될 인물이지만, 혹시나 선우가 미쳐버리거나 다시 눈이 멀까봐, 그리고 그가 이번 생에서 저지른 복수로 영영 헤어나올 수 없는 지옥으로 빠져버릴까봐 그것만 걱정이었던거죠. 


그러나 여전히 자기들이 뭘 잘못했는지 인정하고 반성하기는 커녕, 오직 자신들이 선우에 의해 곤경에 처한 것만 원망하고,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눈깜짝도 안하고 또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그들을 무작정 '용서'하는 것 만큼 더 어리석은 일도 없을 듯 합니다. 아니 처음부터 선우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무릎꿇고 사과했다면 선우는 진작에 그들을 용서해주었을 겁니다. 왜나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달리 춥고 외롭고 지독하게 불쌍한 중생이니까요. 


이제 다음주 종영을 목표로, 2회 분만 남겨둔 <적도의 남자>. 아마 김인영 작가의 전작 <태양의 여자>나 지금 <적도의 남자>가 흘려가는 분위기를 보면 복수를 끝내고 용서와 화해를 그릴 가능성도 높아보입니다. 극한으로 치닫는 사람 간의 증오와 분노를 다루면서 원하지 않는 운명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하는 나약한 인간들의 초상화를 그리고픈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거역하기 어려운 운명때문에 그간 자신을 가장 괴롭히던 친아버지를 용서해야하는 선우. 그것 또한 시청자들이 거역할 수 없는 <적도의 남자>의 예정된 운명이긴 하겠지요. 


하지만 한 때 선우의 등에 칼을 꽃은 인간들이 반성의 기미도 없는데 '휴머니즘'과 '박애주의'를 운운하면서 피해자만 용서하는 어설픈 반쪽 화해는 지양했으면 합니다. 16일 MBC <라디오스타>에서 김태원이 김구라를 두고 언급한 것처럼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자신도 용서받을 자격이 생기기에 용서해야한다는 말이 맞긴 합니다. 허나 용서를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무작정 용서만을 바라기보다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 즉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과 참회가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지금으로서 노식은 단순히 선우 친부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기어코 자신의 친아버지 때문에 어설프게 운명의 끈을 놓아야하는 선우가 안타까운 것입니다. 만약 선우가 끝내 아버지를 용서하겠다는 설정으로 그리는 것이 김인영 작가의 의도라면 그가 그동안 자신의 잘못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렸는지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는 진노식의 극적인 변화와 횡령, 뇌물에 대해서 제대로된 죗값을 받는 모습을 보여줘야할 듯 하네요. 하지만 몇몇 이들의 예측처럼 선우가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란 이유로 진노식을 진정으로 용서할지는 마지막에 가서 뚜껑을 열어봐야 알 듯 하네요. 과연 <적도의 남자>는 어떠한 마무리를 지을 지 사뭇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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